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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와 산책하던 중에 못 보던 고양이를 동네에서 보았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 건지 꽤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달아나지 않고 피하지 않았다. 분명 오전에는 쓰레기 더미 위 판자 떼기에서 자고 있었는데, 오후가 되니 길가에 무더기로 피어있는 이름 모를 풀들 사이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자고 있었다. 습관처럼 자세를 낮추고 두 손을 바닥을 향해 뻗고는 "이리 와~ 야옹~"하고는 말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고양이는 내 손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고 이어 내 다리에 머리를 비비며 야옹거리는 좋다고 하는 신기한 고양이었다. 나도 그에게 예의를 갖추어 손으로 조심스레 머리를 만져주고 몸통을 만져주었다. 어랏? 근데 느낌이 이상했다. 다시 고양이의 몸을 만지다가 깜짝 놀랐다. 그동안 어떻게 지낸 건지 뼈밖에 남아있질 않았다. 정말 말 그대로 뼈밖에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적당히 쪄보였는데 모두 다 털빨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가까이에서 본 고양이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노란색 콧물이 코를 뒤덮었으며 털은 푸석했다.
'얜, 대체 뭐지?'
엄마가 츄르를 가져와 1차적으로 먹을 것을 주고, 2차로 개사료를 가져와 주었다. 얼마나 굶었으면 밥그릇에 코를 처박고 미친 듯이 먹어댔다. 한참을 먹고 또 먹더니 이내 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얘 이대로 두면 죽을 것 같아!" 고양이의 몸 상태가 어느 정도 나아질 때까지 고양이를 도와주기로 했다. 그리고 나선 동물보호센터에 보내기로 했다. 고양이는 정말 말도 안 되게 순했다. 많은 고양이와 교감한 적은 없지만 (강아지만 키워봐서) 이 고양이는 직감적으로 순한 애교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단, 사람을 어찌나 좋아하던지 사람만 오면 야옹-거리며 몸을 다리에 비벼대고 졸졸 따라다녔다. 에너지가 넘치는 강아지가 고양이에게 다가가 냄새를 한참 맡아도 냥냥이 펀치를 날리지도 않았다. 처음 동네에서 봤을 땐 몰랐는데, 고양이를 관찰할수록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고양이에게 드는 의문점 5가지
1, 못 보던 고양이가 갑자기 동네에 나타났다.
= 누군가 고의적으로 버리고 간 것 같다.
2. 사람을 보고 부리나케 도망가질 않는다.
= 반려묘인 것 같다.
3. 오라고 손짓하면 좋다고 온다.
= 우리 집 강아지만큼이나 사람을 좋아한다.
4. 강아지에게 적대감이 없다.
= 강아지와 함께 살았던 것 같다.
5. 몸이 심각하게 앙상하고 건강상태가 좋아 보이질 않는다.
= 길에서 생활하던 고양이가 아니라서 먹이를 구하지 못한 것 같다.
= 몸에 질병이 있어서 고의적으로 버린 것 같다.
고양이에 대한 의문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살아있는 생명을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버렸다고 생각하니, 고양이가 너무 불쌍했다. 누군지 모를 유기한 주인에게 쌍욕을 퍼붓고 싶었다. 순하디 순한 얼굴, 예쁜 두 눈, 야옹거리는 예쁜 목소리.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한 고양인데..

비염약 등을 지어와 알약을 먹였다. 정말 놀랍게도 고양이의 입안으로 알약을 집어넣어도 할퀴거나 물지 않았다. 당연히 싫어했지만 그렇다고 할퀴거나 물지 않아서 정말 놀랐다! 뭐 이리 강아지보다 순한 고양이가 있는지ㅠㅠ.. 고양이의 건강이 조금 나아지면서 동물보호센터에 전화를 걸어 이래저래 상황을 설명했더니 글쎄 고양이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말했다. 고양이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품종이 아니라서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니 이게 무슨 개떡 같은 상황인가?! 품종이어야만 동물보호센터에 들어갈 수 있다니 이거 차별 아닌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다음날 엄마가 시청에 항의 전화를 하니 동물보호센터에서 전화가 와서 하는 말이라곤 고작 " 100% 유기된 증거가 없으면 데리고 갈 수 없다. 게다가 건강하지 않으면 더욱 안된다. 길냥이도 사람 손 타서 잘 따른다. 지금 동물보호센터에 고양이가 풀로 찼다." 아니, 100% 유기된 증거의 기준이 품종묘로 가려지던가? 건강한 아이만 받겠다는 것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나 뭐라나. 기가 찼지만 전화를 끊었다.
그 일 이후로 한달이 흘렀다. 현재 고양이는 살이 전보다 쪘고, 동네 주민들의 귀여움을 받고 있다. 시골이라서 먹다 남은 사람 밥을 가져다주시는 분이 계시지만, 그래도 고양이를 미워하지 않고 가엽게 여겨주는 분들이 많아서 정말 다행이다. 그동안 고양이 사료를 사서 매일 두둑이 주었는데 이상하게도 옆구리 쪽은 쪘는데, 등 척추 쪽은 뼈밖에 없다. 몇 번이나 고양이를 데려와 기르려고 가족과 의논을 했지만 이래저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당에 두고 키우려고 했더니, 동물병원 선생님께선 다른 길고양이와 접촉해서 고양이에게 병이 옮고, 키우는 강아지에게도 (노견) 병이 옮을 수 있어서 키우려면 집안에서 키워야 한다고 했다. 집안에서라도 키우고 싶은데, 내가 털 알레르기가 있기도 하고 엄마가 집안에서 털 많이 날리는걸 극적으로 싫어하셔서 일단 물거품이 되었다. 사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므로 더 고심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엄마가 매일 밥과 물을 주러 다니고 나는 털을 빗겨주거나 만져주거나 츄르를 주러 가고 있다.

멀리서 내가 걸어오는걸 보기라도 하면 일찌감치 마중 나와 고양이는 기다리고 있다. 한참 만져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가기라도 하면 내가 안 보일 때까지 망부석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나를 바라만 보고 있다. 따라 올 법도 한데, 고양이는 우리의 사정이라도 아는 듯 선을 지킨다. 생각해보니 우리의 첫 만남도 그랬다. 만일 내가 습관적으로 고양이에게 이리오라고 손짓하지 않았더라면, 고양이는 먼저 내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선을 유난히도 잘 지키는 고양이는 오늘도 집으로 돌아가는 나를 멀찌감치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고양이의 지난날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분명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살던 고양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사랑했던 주인에게 영문도 모른 채 버림받은 고양이는 이름 모를 고양이가 되었다. 고양이에게 다시 좋은 주인이 생기고, 풍족한 사랑이 넘쳤으면 좋겠다.
<이름 모를 고양이 , 상아>
이름없이 떠도는 삶에
지쳐버렸다고 말할 것만 같은데,
집으로 돌아가는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바라보다
그렇게 너는 이름 없는 고양이로 되돌아갔다.
더 이상 버려지는 생명이 없었으면 좋겠다. 동물의 생명을 예쁜 인형으로 착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버려진 동물들은 언제나처럼 사람의 온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정 키우고 싶으면 식물이라도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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