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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에게 20

동상이몽, 할머니의 외래






글 쓰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내가 생각한 것들을 차곡차곡 나열하는 일과 즐거웠던 순간을 글로 재미있게 남겨 기억을 보존시키는 일은 언제나 즐거움을 준다. 생각한 것들을 차곡차곡 나열하는 즐거움은 나의 마음을 정리하고 알아간다는 유익함에서 비롯되고, 즐거웠던 순간을 글로 재미있게 남기는 즐거움은 즐거웠던 순간을 곱씹으며 피식- 하고 웃고 기억을 누군가와 즐겁게 공유할 수 있는데서 비롯된다. 오늘은 생각만 해도 피식- 하고 웃게 만드는 기억을 공유하려고 한다.


 

 


우리 할머니


인생의 반 이상을 할머니와 함께 지냈다. 우리 할머니는 집안일을 깔끔, 꼼꼼하게 잘하시는 살림꾼이셨다. 평생을 집안일만 하셨던 터라, 집안일할 때 보람을 많이 느끼셨다. 깨끗한 집, 정리정돈 잘된 부엌, 뽀송뽀송하게 잘 마른빨래 등을 보시면서 보람을 느끼셨다. 몸 아픈 와중에도 집안일을 하신걸 생각해보면 할머니의 삶은 집안일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그런 할머니에게도 집안일이란 하나의 삶이 저물어가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신부전증으로 정기적으로 대학병원을 다녀야 했다. 병원에 동행할 사람이 여의치 않을 땐 주로 내가 할머니의 보호자가 되어 고등학생 때부터 병원을 다녔었다. 할머니가 그나마 건강하셨을 땐 걸어 다니셨지만 건강이 조금씩 쇠약해지면서부터 휠체어를 대여해서 다녔다.

할머니는 병원에 갈 때마다 하는 말이 있었는다. 할머니는 예의를 갖추시는 분이셔서 대개 의사 선생님들의 단골 멘트가 나오고서 말을 줄줄이 사탕 꺼내놓기 시작했다.

“요즘은 좀 어떠세요? 어르신 ~”

“ 아이고, 선생님 내가 요즘 잠을 못 자서 미치겠어요. 잠 좀 자게 좀 해주세요. 잠 못 자니깐 힘들어요.”

“ 예, 잠을 못 주무셔서 힘드셨군요?”

“ 예 그런데요 나 참 잠이 왜 안 오는지 모르겠어요. 자고 싶은데 잠이 안 와서 매일 잠도 못 자고 눈 뜨고 있다니깐요? “

“ 아 그러셨구나... “

•••

할머니와 의사 선생님들의 대화는 주로 이런 형식으로 이루어지곤 했다. 영혼 없는 질문과 기계적인 공감으로 이루어진 말과 도통 끝이 보이질 않는 할머니의 하소연의 조화는 매번 봐도 익숙해지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의 하소연 멘트가 하나씩 쏟아질 때마다 내 머릿속에선 어제, 엊그제의 할머니가 생생히 그려졌었다.


동상이몽

 


늦게 기상하던 당시의 나는, 기상과 동시에 거실로 나가 물을 마시러 갔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할머니가 소파에서 입을 딱 벌리고 코를 골며 주무시던 풍경이었다. 어찌나 깊이 주무셨던지, 할머니가 소파에서 사용하는 본인 전용 이불이 삐딱하게 있거나 바닥에 떨어져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 병원에서 하는 말!

“ 아이고, 선생님 내가 요즘 잠을 못 자서 미치겠어요. 잠 좀 자게 좀 해주세요. 잠 못 자니깐 힘들어요.”


 

 

 


아무래도 본인이 오후에 열심히 주무셨다는 건 까맣게 잊으신 것 같다. 잠을 못 잤다기엔 곤히 코까지 골며 주무셨는데, 뜬 눈으로 지새운 새벽만 얄밉게 기억하셨나 보다. 어디 그뿐만이랴, 의사의 단골 멘트에 우리 할머니는 입맛이 통 없어서 밥을 못 먹고 지내는 새로운 하소연을 쏟아내기 시작하는데...., 내 머릿속에선 할머니의 하소연과는 다른 또 다른 모습이 떠올라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 요즘 입맛이 통 없어서 밥을 못 먹어요 선생님. 이거 밥을 못 먹으니깐 기운이 없어서 죽겠어요. “

할머니는 입맛이 없을 때마다 주로 면 종류를 드셨다. 입맛 없는 점심시간은 주로 나와 함께 했다. 당시의 난 통증으로 밥을 거의 먹질 못했다. 하루 한 끼, 그것도 두세 숟갈 먹으면 무난하게 먹은 수준이었을 정도로 입에 넘어가는 음식이 없었다. 그러니 입맛 없는 두 여인이 만날 때면 점심은 단출할 수밖에 없었다. 계란 넣고 끓인 면이 물렁 물렁하게 불어버린 라면 한 개. 그게 입맛 없는 할머니와 입맛 없는 내가 먹던 음식 중 하나였다.

할머니와 나는 라면을 식탁 정 가운데에 놓고 먹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라면을 나보다는 더 드셨다. 만약, 여기서 할머니의 입맛 없는 점심이 끝났더라면 할머니의 하소연에 고개를 절로 숙연하게 숙였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 밥통에 있던 밥을 가져오시더니 라면 냄비에 듬뿍 넣으시고는 열심히 말아 드시기 시작하셨다.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어찌나 맛있게 드시던지 밥을 더 말아 드리고 싶을 정도였다. 맛있게 라면 국물에 밥까지 말아 드시고 시원하게 트림 한번 날려주셨다!

어느 날에는 엄마가 꽃게탕을 끓여주셨는데 글쎄 우리 할머니, 열기 식히려고 서늘한 베란다에 놓은 꽃게탕을 이빨로 아작 내며 드시고 계신 게 아니던가! 그때의 신선한 충격은 지금까지도 잊히질 않는다. 이도 성치 않은데 어쩜 단단한 껍질을 가진 꽃게를 이로 아작 내며 맛있게 드실 수 있었는지 참 불가사의한 일이다.

 

`

 


할머니와 다녔던 외래에서 우리의 동상이몽은 확연하게 드러났다. 할머니의 하소연이 전부 거짓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목격한 진실과는 묘하게 엇갈렸던 것 같다. 할머니와 대학병원으로 외래를 다녀오던 날이면, 엄마에게 병원에서 있었던 할머니의 귀여운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할머니의 보호자로 다녔던 외래,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가족들에게 전하고는 함께 깔깔거리며 웃게 만든 할머니의 에피소드는 아직까지도 내 마음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할머니의 귀여운 에피소드의 디테일이 점점 잊혀간다. 기록하지 않으면, 그때의 감정만을 어렴풋하게 기억하겠지만 디테일이 사라진다면 뭉뚱그려 기억하는 그때의 감정도 어째 힘을 잃어가는 것 같다. 그러므로 오늘은 할머니의 귀여운 에피소드를 기억으로 뭉뚱그리지 않고 글로 확실하게 남겨놓고 싶었다. 날마다 내 끼니와 입맛을 걱정하시던 우리 할머니 최정옥 여사. 살아계셨더라면 예전과는 다르게 잘 먹고 살도 잘 찐 (?) 나를 보고 좋아라 하셨을 텐데.., 어쩐지 추석이 다가올 때면 할머니가 절로 그리워진다. 할머니 없이 맞이하는 3번째 추석, 할머니가 계셨더라면 좋아했을 우리들의 소식들은 가을 낙엽 잎처럼 수두룩하게 쌓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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