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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은 유달리 맑다. 산들거리는 바람이 기분 좋을만치 불어댄다. 매년 맞이했던 가을이건만, 올 가을은 왠지 모르게 사랑스럽게까지 느껴진다. 그래서였을까, 산책하다 발견한 이상하고 한적한 샛길에 겁 없이 발을 디뎠다. 평소 같았더라면 겁먹고 근처에도 가지 않았을 텐데, 가을이란 계절은 내게 모험을 즐길 용기를 가져다주었다.
약간의 오르막 길을 올라가 보니, 기가 막힌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와,,, 정말 아름답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참 경이로웠다. 어찌나 경이롭던지 잊고 지내던 삶의 감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두 발로 걷고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고 코로 호흡하며, 온몸으로 자연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아프고 난 뒤로는 고백하지 못했던 감사였다. 억지로 감사를 고백하려 애쓰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감사의 단계, 결이 다른 감사였다. 그것은 진심이 우러나온, 진정성 있는 감사의 고백이었다. 이로써, 감사의 모양은 흉내 낼 수 있어도 감사의 마음까지는 담아낼 수 없는 게 감사의 영역이란 걸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내겐 더없이 값진 감사 고백이었다 :)
걷는 게 불편하고, 체력이 썩 좋지 않고, 종종 통증에 몸서리쳐도 그래도 작게나마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불편하지만 두 발로 걸으며 강아지와 산책을 즐길 수 있고, 두 눈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연을 보며 행복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만일까, 두 귀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평안을 누리고 타인의 말을 듣고 함께 웃고 울 수 있다. 들숨 날숨으로 코와 폐에 자연이 주는 좋은 공기를 넣고 뺄 수 있다. 아차! 제일 중요한 감사를 빠뜨렸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며 살까지 찔 수 있으니 (?)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건강이란 기준을 누가 정해 놓은 건진 몰라도, 삶을 사랑하며 즐길 수 있다면 그게 건강한 상태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몸이 불편하고 그로 인해 모든 것들이 더디어도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면 불편함과 더딤은 더 이상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을 거라 믿게 되었다. 살다 보면 아플 수도 있고, 나을 수도 있고, 장애가 생길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또한 별 일 아니다.
누군가는 보는 이의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하며 두 발로 불편하게 걷는 나를 부러워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두 눈으로 보고 누리는 것에 부러워할 것이다. 건강 기준은 비교대상에 따라 건강과 쇠약함을 오갈 것이다. 덧붙여 건강한 게 당연한 것이라 믿는다면 감사를 잃을 수밖에 없다. 당연한 건 없다. 단지, 익숙하고 보편적인 것만 있을 뿐이다.
한참을 이런저런 사색에 잠겨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광활한 마음으로 보았다. 허리와 다리가 저릿하게 아파 올 때쯤, 내 옆에 있는 나무에 손을 얹고 쓰다듬으며 말을 건넸다.
'나무들아, 고마워. 너희 덕분에 내가 좋은 공기를 마시고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지고 있어. 내일도 또 올게. 안녕.'
그렇게 나는 한결 가뿐해진 마음과 단단한 태도와 함께 내리막길을 힘차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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