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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송했다. 내가 잘 지내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몸이 아프거나 울적하진 않는데 어째 썩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 잘 모르겠어 >. 친구의 안부인사에 하루 종일 < 잘 모르겠어 >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 거지?

한적한 시골마을로 이사온지 어느덧 석 달이 되었다. 그동안 매일 강아지와 산책을 다니며 자연을 온몸으로 누렸고 하루 한 끼 먹던 식사가 점차 삼시 세끼로 변해갔다. 삼시 세끼, 단어 그대로 잘 챙겨 먹었다. 오후 11시엔 잠을 자고 오전 8시에 기상하며 ( 잠이 많다. ) 올빼미형 생활을 청산하고 개운한 하루를 맞이하게 되었다. ( 아침에 기상했을 때의 뿌듯함과 개운함은 너무 좋다 :) 비교적 체력과 마음도 전보다 건강해졌다. 그런데, 그런데, 나는 잘 지내고 있다는 대답을 선뜻 보내지 못했다.
무지한 잘못
희귀성 난치질환을 앓고나서부터 십 년이란 시간 동안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쉰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보려고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한 것이다. 생소한 질병과 그로 인해 겪게 되는 무수한 어려운 상황에 나의 작은 머리는 과부하에 걸리기 일쑤였고, 여린 마음에는 절망감의 상처가 드리웠다. 누군가는 내게 무언가 하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편하게 있어보라고 조언을 해주었지만, 나는 어떻게 노력을 그만둘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지 못했다.
매일 밤마다 나의 부족함을 질책했고 보완할 점을 찾아냈다. 어쩌면, 나의 무지함과 게으름이 질병을 더 악화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를 다그치며 살아왔던 것이다.... 무지하다, 희귀성 난치질환은 내게 무지함의 무력감을 알려주었다. 정확한 원인도 치료방법도 모른다는 무지. 그것에 제대로 대항해 보지 못하는 무력감, 이 모든 게 꼭 나의 잘못인 것 같았다. 무지한 나의 잘못...
무지한 잘못은 정말 무지하게 나를 괴롭혔다. 무지한 게 잘못이 아니지만, 무지해서 속수무책으로 겪는 상황은 충분한 잘못이 되었다. < '어쩜 이렇게 무지하지? 어쩜 이것밖에 못해내는 거지?' > 그렇게 희귀성 난치질환은 고스란히 나의 잘못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안식년 ; 소원
선교사님이 7년에 한 번씩 쉬는 해가 안식년이라고 불린다. ( 재충전의 기회를 갖도록 하기 위하여 1년 정도씩 주는 휴가. ) 일에서 멀어져 1년 동안 재충전을 하며 보낼 수 있다니 정말 좋은 휴가인 것 같다. 만약 가난과 질병에도 안식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는 법이다. 가난과 질병의 끝은 부요와 치유일 것이다. 그러나 그 끝을 맞이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1년 정도 가난과 질병으로부터 벗어나 재충전할 수 있는 휴가를 얻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식년, 내가 종종 입버릇처럼 내뱉던 단어였다. 지금껏 질병을 나름대로 극복하려고 무진장 애를 써었고, 이전보다 더 건강해지려고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건강에 매달렸었다. 죽도록 애쓴 만큼 바라는 바가 이루어졌더라면 안식년을 갈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안식년이란 질병에서부터 벗어나 마음 편히 오롯이 쉴 수 있는 하나의 소원이었다. 비록 몸은 여전할지라도 마음만큼은 어떠한 의학적 지식과 무지함에 얽매이지 않고 밝고도 가볍게 살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안식과 아리송한 혼동 사이를 오가는 듯싶다.
다만 네가 보고 싶어
잘 지내는 것도 아니고 잘 지내지 못하는 것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날들을 보내고 있노라고 대답하고 싶다. 친구야, 나는 요즘 잘 지내지도 못 지내지도 않아. 다만 네가 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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